2021년도 인하학교 조형예술 대학원
• 장소 : Gallery Hans (서울 성북구 정릉로 10길 127)
• 기간 : 2021.11.24 (수) - 12.09 (목)
• 시간 : 11:00AM - 19:00PM
• 기획 : 김해나
• 작가 : 박시원 손지원 신다혜 신연화 육은정 이건희 최희연
‘매듭 이론’이란 화학자 켈빈이 원자가 단단한 입자가 아닌, 특정한 모양과 구조에 따라 물질의 성질과 화학반응이 결정된다고 주장한 이론에 따라, 입자의 모양을 ‘매듭’에 대응하여 생각한 것에서 출발한다. 서로 다른 매듭의 모양이 각자 다른 원소에 대응한다는 가설은 원자구조의 모델이 19세기에 등장하며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매듭이론은 형태가 다른 매듭이 교차점의 개수와 위치를 대조하여 같은 매듭임을 증명하는 것에 뿌리를 두고 지속해 연구되어 왔다. 이 ‘매듭’으로 규정될 수 있는 요소를 작가 개인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언뜻 달라 보이는 두 개의 매듭이 있다고 하자. 보이는 두 매듭의 형태가 다르더라도 매듭이 공간에서 적절히 변형되어 같은 형태를 취할 수 있다면 두 매듭을 같다고 취급하는 매듭 이론에 따라, 작품에 쓰인 레퍼런스와 작품의 이미지를 관람자가 둘 다 알고 있는 상태라면 우리는 그것의 시초가 같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작가는 형태를 적절히 변형하여 그것을 새로운 매듭으로 묶어 다른 형태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매듭은 점점 늘어나 시리즈를 이루기도 하고, 아예 다른 매듭과 묶여 새로운 형태가 되기도 한다.
작품을 만들 때 원본 이미지 등의 레퍼런스를 참고하는 것은 이제 드문 일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오히려 그 ‘이미지’로부터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원본-어쩌면 이미 열화를 한껏 거쳐 그것마저 ‘원본’의 형태가 남아있지 않은 2차나 3차로 생산된 이미지-에서 왜 본인에게 그것이 선택되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존재한다. 작가들은 특별한 의도, 무의식적으로 많이 접했던 친숙함, 대중에게 이미 선택받았음을 공고히 하는 어떠한 상징, 무작위로 일어나는 생각들로부터 떠내려온 파편, 본인이 생산의 주체가 된 일상의 구석들을 기반으로 작품 위에 다양한 것들을 쌓아올린다. 이미지 중간에 끼어드는 글들이나 경험들은 전부 다른 형태로 발산되며, 산발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이나 과거의 경험, 트라우마가 반영된다. 그런 방식으로 작가들은 이 자료들을 자신의 작품과 연결시키며 첫 매듭을 짓는다.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모두 선택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각자 그 안에 자신이 생각하는 세계를 투사하고 있다. 이는 식물이 있는 풍경이기도 하고, 잠든 시간의 새벽이기도 하며 지나가면서 스치는 빌딩이기도 하다. 관조적으로 떨어져서 바라보는 시선에 가까운 태도로 그들은 이미 있는 사람을 지우고, 색깔을 바꾸고, 재해를 일으키며 지각에 변동을 가져온다. 그런 풍경이 ‘더 좋기’ 때문에가 아닌, 작가가 의도하는 변화가 자신의 세계에서는 마땅하고 지당하게 일어나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사건들은 일어난다. 의도대로 만들어진 화면을 두고, 작가들은 다시 새로운 세계를 꺼내려 방랑하고 있다. 관람자는 전혀 다른 화면들에서 그들이 묶은 매듭의 동일성을 발견하는 동시에 다양한 형태의 확장성을 논할 수 있게 된다. 이 전시에서 우리는 작가가 묶은 매듭의 자취를 따라가 시초의 근본적인 형태를 아카이브 형식으로 들여다보고 다음으로 엮일 매듭의 모양을 기대해보고자 한다.